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문화/교육/스포츠

사람의 향기

의령정론 기자 입력 2026.02.23 12:53 수정 2026.02.24 20:11

갈라진 마음 위에 다리를 놓는 사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령군협의회 강효덕 회장 이야기
의령의 겨울은 소리가 낮다. 바람은 들녘을 스치되 요란하지 않고, 햇빛은 마을 지붕 위에 오래 머문다. 그 고요 속에서 만난 강효덕 회장은 풍경을 닮아 있었다. 말을 아끼는 대신, 오래 생각한 사람의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문장은 짧았지만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다듬은 언어였다.

“요즘은 마음들이 많이 갈라져 있지요. 보수니 진보니, 세대니 지역이니…. 나는 그 틈을 조금이라도 메우고 싶습니다.”
그는 ‘통합’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다독임’이라는 표현을 썼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며, 남은 시간을 사람들 마음을 잇는 데 쓰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은 결심이라기보다 다짐에 가까웠다. 오래 품어온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듯했다.
강 회장의 삶은 요란한 궤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단단하다. 지역사회 봉사와 공공 활동은 늘 그의 일상에 있었다. 드러나기보다 지키는 역할을 택했고, 앞에 서기보다 곁에 머무는 쪽을 택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말한다. 신뢰는 그렇게, 오랜 시간 속에서 쌓였다.

“리더십이랄 게 있습니까. 그냥 사람 말 끝까지 들어주는 겁니다.”
그의 리더십은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경청의 태도다.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판단보다 이해를 먼저 두는 것. 그는 갈등을 논리로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상처 난 마음을 조용히 꿰매듯, 작은 공감으로 다가간다. 분열의 시대에 그가 선택한 방식은 속도가 아니라 온기다.
젊은 날, 그는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국의 낯선 공기 속에서 그는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갔다. 그 시간은 그의 언어를 바꾸어 놓았다.

“전쟁은 사람을 많이 바꿉니다. 총소리보다 무서운 건 사람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그 말은 전장의 기억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통찰처럼 들렸다. 귀국 후 이어진 군 생활 역시 녹록지 않았다. 규율과 책임, 설명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그는 버텼다. 그 시절을 그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아찔했다”고 표현할 뿐이다. 절제된 단어 하나에, 겪어낸 시간의 무게가 응축돼 있다.
세월은 그에게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깊이를 더했다. 그는 강해지기보다 부드러워졌다. 상처를 겪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감각이 그의 말 사이사이에 스며 있다.

“이제는 따뜻하게 살고 싶습니다. 누군가 마음 아프다고 하면 그냥 옆에 앉아주고 싶습니다. 큰일은 젊은 사람들이 하면 됩니다. 나는 조금 부드러운 역할을 하면 되지요.”
그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소박함이 오히려 묵직하다. 삶의 끝자락에서 남는 것이 명예나 직함이 아니라 ‘곁에 있어준 시간’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의령의 마을도 시대의 흐름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생각은 나뉘고, 목소리는 높아진다. 그러나 강 회장의 행보에는 진영의 색이 짙게 묻어나지 않는다. 대신 세월의 빛이 배어 있다. 이념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난 태도, 판단이 아니라 이해를 먼저 두는 마음.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역사다. 전쟁을 지나고, 군복을 벗고,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 사람들 곁에 서기까지. 그의 궤적은 요란하지 않았으나 단단했다. 그는 지금도 다리가 되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에 놓이는 작은 다리.
그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어떤 다리로 남을 것인가.
갈라진 시대일수록, 조용히 잇는 사람이 더 깊다. 그리고 그 깊이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

                                                                                                   정론 김상오 기자



저작권자 의령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