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일침〕
2022년, 의령농협양파 ‘증발’ 논란은 단순한 재고 관리 문제로만 넘길 수 없는 깊은 질문을 지역사회에 남겼다. 35억 원 규모로 거론되는 손실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류도 숫자도 아닌 사람이다.
한여름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묵묵히 흙을 일구는 농민들. 말없이 땀을 흘리며 계절과 싸우는 그 손길, 그 발걸음, 그 눈빛 말이다.
피땀 어린 농산물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는 사실 앞에서, 어떤 설명이 과연 충분할 수 있겠는가. 협동조합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 이전에 신뢰를 관리하는 조직이다. 경영은 결과로 말하고, 책임은 직위가 아니라 구조 전체가 함께 지는 것이다. 그럼 에도 책임의 무게보다 해명의 기술이 앞서는 듯한 모습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조직의 위기가 아니라 신뢰의 위기다.
조합은 어려울수록 지혜를 짜내고, 손실이 발생했을수록 더 투명하게 설명하며, 가능하다면 단 한 푼이라도 농민에게 돌려주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협동조합 정신의 최소한이기 때문이다.
“관여하지 않았다”는 말이 면책이 되는 순간, 책임의 사슬은 끊어지고 조직의 근간은 흔들린다. 관리 권한과 책임 범위가 분리된 조직은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된다. 그때 피해는 언제나 말 없는 순박한 농민들에게 돌아간다.
생각해 보자.농민의 생산물을 맡아 관리하는 조직에서 관리 부실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니라 신뢰 계약의 붕괴다. 신뢰는 계약서보다 오래가지만, 무너지기는 훨씬 빠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지금부터다. 이번 일이 한 조직만의 문제로 끝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지금 의령 관내 다른 금융·협동 조직들은 과연 내부 통제와 책임 체계를 스스로 점검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르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점검했다”는 증거가 필요한 시점이다. 농민의 땀은 숫자로 환산되지만, 신뢰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면 결국 숫자도 무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점검이다. 책임 회피가 아니라 구조 개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민의 노동이 결코 가볍게 취급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명이다. 지역의 모든 협동·금융 조직은 본인에게 반문해야 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자산이 아니라 신뢰라는 사실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가.
2022년의 쓰라린 상실은 단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하라는 시대의 경고였다.
이제 의령농협은 그 교훈을 마음 깊이 새기고, 절제와 책임의 살림으로 신뢰를 다시 짓는 공동체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