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종종 잊는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희미해지고, 아픔은 기록 속 한 줄로 무뎌진다. 그러나 공동체의 품격은 “잊지 않을 용기”에서 시작된다. 의령의 4·26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한 지역의 영혼이 찢겨나간 날이며, 그것을 어떻게 기리고 복원할 것인가의 문제는 행정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책임의 문제였다.
그 일을 누구도 끝내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갔다. 예산은 막혔고 제도는 엉켜 있었으며, 중앙정부는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바로 그때, 고요한 의령의 공간 한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의지가 역사의 물꼬를 바꾸었다.
“이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
오태완 군수의 결단
추모공원 조성 과정은 문서와 회의, 설득과 반려가 반복되는 지루한 행정의 싸움 같았지만, 실제로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벌어진 진실의 심판에 가까웠다.“이 비극을 기억하게 하지 못하는 지역사회는 어떤 미래를 꿈꾼단 말인가.”이 물음이 오태완 군수를 움직였다.
그의 발걸음은 단순한 보고나 청탁이 아니었다.당시 김부겸 총리를 직접 찾아가, 수많은 장벽을 논리와 사실, 그리고 공동체의 아픔으로 꿰뚫었다.설득이 아니라 ‘책임을 흔드는 일’ 이었다.
행정의 언어가 흔히 숫자와 절차라면, 그날 그의 언어는 기억과 인간, 그리고 도리의 언어였다.“이 공원은 의령의 땅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희생된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그 한마디가 중앙정부의 마음을 움직였다.무너져 있던 흐름이 비로소 하나의 길이 되었다.
추모공원은 ‘건축물’이 아니라 ‘준엄한 질문’이다
4·26 추모공원은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의령이라는 지역이 국가 앞에 던지는 윤리적 선언이다.“우리는 공동체의 아픔을 잊지 않는다.”“어떤 발전도 사람의 존엄보다 앞에 설 수 없다.”“비극은 기억될 때 비로소 미래를 지킨다.”
그리고 이 선언의 중심에는 오태완 군수가 있었다.그의 결단은 돌 하나를 세운 일이 아니라, 기억의 자리를 다시 세운 것에 가깝다.
인문학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추모공원 조성은 단순히 예산의 승리가 아니다.그것은 공동체가 자기 상처를 직시하고, 그 흔적을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역사적 책임의 승리이다.
인문학은 늘 묻는다.“기억하지 않는 공동체에게 미래는 존재할 수 있는가?”의령은 이제 그 질문에 답한 도시가 되었다.기억의 자리를 만들고, 아픔을 직면하고, 그 위에 새로운 길을 놓는 도시 말이다.
4·26 추모공원은 결국 이런 말을 우리에게 남긴다.“역사는 어느 날 우연히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용기가 흐름을 틀 때 바뀐다.”
그리고 의령은 그 변화를 오태완이라는 한 행정가의 결단에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