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에서도 지켜낸 백산 안희제의 신념과 민족혼 역사는 기록보다 깊은 인간의 고통 위에서 빚어 진다.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던 격동의 시기, 백산 안희제 선생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그에게 감옥은 단순한 형벌의 장소가 아니었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견뎌야 할 ‘역사의 고비’였다.
“나라 없는 민족은 뿌리 뽑힌 나무와 같다”는 말을 남기며 옥중에서도 동지들에게 희망의 편지를 띄웠다. 그의 방 안에는 먹을 갈던 조그마한 돌과남몰래 적어둔 한 줄의 시가 남아 있었다.“몸은 묶였으나, 내 뜻은 자유로다.”그 한 줄이 바로 그의 삶 전체를 설명한다.
감옥에서도 그는 경제독립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동지들에게 “언젠가 해방된 조국은 스스로의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그가 상해에서부터 평생 실천해 온 민족 자립의 신념이었다.
안희제는 1942년 11월19일 만주 목단강성 경무청 형사 3명에게 체포되어 목단강으로 호송되어 경무청에 수감된다 8개월간의 86번에 달하는 모진고문 끝에 출감한 다음날인 1943년 8월 3일, 친척동생 안영제가 경영하는 만주 목단강시의 영제의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출옥한지 3시간만에 향년 59세로 순국하셨다그러나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완성된 신념의 결실이었다.
안희제 선생의 생애는 ‘어떤 억압도 정신을 가둘 수 없다’는 진리를 증명한다. 그가 남긴 유산은 재산도, 건물도 아니었다. 오직 뜻과 정신,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진 민족의 자존심이었다. 그의 순국은 의령이라는 한 고장의 비극이 아니라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한 장엄한 절정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땅은 그가 지켜낸 신념의 결실 위에 서 있다.
의령의 산천은 여전히 고요하지만, 그 땅에서 피어난 백산의 정신은 오늘도 후손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쉰다.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묻는다.“지금 당신은 무엇으로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 물음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이유는,그가 이미 답을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의령정론신문 기획취재팀(다음 편 – 제4편 ‘백산 정신, 오늘의 의령이 본다’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