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잘해보자고 모인 자리였다.기자간담회라는 이름 아래 가벼운 농담이 오갔고, 몇 차례 술잔이 돌았다. 지역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자리는 시간이 흐르며 전혀 다른 이름을 갖게 됐다. ‘사건’이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도, 강제추행으로 규정할 만한 정황은 없었다. 군청 여직원과 지역 언론인이 함께한 공개된 자리에서 누군가의 의사에 반하는 물리적 강제가 있었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물론 취중의 언행이 상대에게 불편함을 줬다면, 성희롱이라는 문제 제기는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제추행이라는 법적 판단은 그날의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확대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다만 피해를 호소한 여성의 마음을 외부에서 섣불리 예단하거나 단정하는 일 역시 신중해야 한다.
이 사건은 사실관계 자체보다, 그것이 어떻게 규정되고 소비되었는지가 더 큰 문제였다.손을 잡았는지, 잡지 않았는지. 그 하나의 쟁점을 두고 사건은 수년간 이어졌고, 그 사이 사회에는 하나의 공식이 굳어졌다.언제나 남자는 가해자, 언제나 여자는 피해자.개별 상황과 맥락은 사라지고, 프레임이 앞섰다.
수사와 재판은 냉정해야 한다. 그러나 냉정함은 균형을 전제로 한다.의혹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향한 질문보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사건이 끌려가는 듯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씁쓸함을 남겼다. 언론 역시 확인보다 속도가 앞섰고, 설명보다 자극이 앞섰다.
이 글은 특정 인물을 두둔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이미 법적 판단이 내려진 사안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그날의 일이 침소봉대되며 지역사회 전체를 소모적인 갈등으로 몰아넣은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서툰 증언과 준비되지 않은 말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정의는 어디까지 사실을 담아내고 있는가.법은 갈등을 봉합했는가, 아니면 낙인을 고착시켰는가.언론은 진실에 다가갔는가, 아니면 분노를 증폭시켰는가.
흑역사는 개인에게만 남지 않는다.대통령의 흑역사가 국가의 부담으로 남듯, 이 사건 역시 의령군수 개인을 넘어 지역 전체의 상처로 고착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사실과 별개로 이미지가 먼저 기억된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손실이다.
사설과 칼럼의 역할은 분명하다.사건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차분히 제자리에 놓는 것.누군가를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균형을 잃은 지점을 짚어내는 것이다. 그날은 사건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는 그날을 사건으로 만들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이 불편한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의령정론은 묻는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죄인가, 성찰인가.
지금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정의인가, 아니면 분노인가.
우리 의령은 이제 성찰의 자리에 선다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속도보다
한 사람을 키워내는 느린 책임을 선택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