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은혜를 만난다.너무 고마워서, 말로 옮기는 순간 오히려 가벼워질까 두려운 그런 인연.
아내의 친구 이야기다.
인생이 기울어질 때면 그 친구는 어김없이 곁에 서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경과를 확인하러 병원을 찾은 날, 조용히 병원 복도에 먼저 와 앉아 있던 사람. “괜찮지?”라는 짧은 말 속에 걱정과 기도가 함께 담겨 있었다. 밥을 사며 등을 두드려주고, 형편을 묻지 않은 채 슬며시 건네는 도움까지. 흔히 말하는 ‘금융치료’라는 농담조차 그 손길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수년 전, 직장에서의 배신으로 눈물을 삼키며 회사를 떠나야 했던 날도 그랬다. 억울함과 허탈함이 뒤엉켜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시간, 그 친구는 함께 울어주었다. 해결책을 늘어놓지 않았다. 대신 곁에 앉아 눈물의 속도를 맞추어 주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논리가 아니라, 함께 흘려주는 눈물이라는 것을 그때 배웠다.
세상에는 관계의 이름이 많다. 동료, 선후배, 이해관계자…. 그러나 이해타산을 넘어선 관계는 드물다. 힘이 있을 때가 아니라 힘이 빠졌을 때 다가오는 사람, 환한 자리보다 그늘진 자리를 함께 선택하는 사람, 그가 진짜 친구다.
아내는 그 친구를 두고 이렇게 중얼거린다.“친구란 두 사람의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몸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처럼 움직이는 관계. 기쁨은 나누면 두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짐은 함께 들면 가벼워진다는 오래된 진실.
나는 때때로 그 친구를 보며, 그런 벗을 둔 아내마저 경이롭게 느껴진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평범한 이치를 새삼 깨닫는다. 한 사람의 인품은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의 깊이로 드러난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진다고들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병실 문을 조용히 열어보는 발걸음, 사연을 묻지 않고 내미는 따뜻한 손, 눈물의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우정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이 공동체는 아직 희망이 있다.
위기의 순간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삶은 버틸 만해진다.
두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그 말이 오늘은 한 편의 시처럼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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