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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부호자(虎父虎子), 부모의 용기가 아이의 기상이 된다

의령정론 기자 입력 2026.04.12 09:09 수정 2026.04.12 09:17

↑↑ 월드비전 대구경북지역 본부
김은지 과장
3월의 벚꽃이 남들에겐 축복처럼 내리는 분홍빛 꽃비지만, 내게는 살을 파고드는 차가운 파편과 같았다.

왜냐하면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마주한 현실은 낭만이 아닌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또래보다 체구가 작고 말이 서툴러 치료센터를 다니는 아들이 과연 유치원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분명 적응하지 못할 거야", "결국 쫓겨날 거야"라는 '고정 마인드셋'은 나를 사표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려고 했다.

하지만 3월의 끝자락, 나는 여전히 회사로 향하고 아이는 씩씩하게 등원 버스에 오른다. 돌이켜보니 지난 시간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시련이 아니라, 신이 내게 주신 혹독한 '광야 훈련'이었다. 여자 선수인 내게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성별이 다른 상대에게 얻어맞으며 버티게 했던 그 시간들. 당시엔 이유를 몰라 원망하며 울었지만, 실제 경기장에 올라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매질 덕분에 내게는 맷집이 생겼고, 모래주머니를 벗어던진 몸은 누구보다 가벼워졌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공격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성장 마인드셋'이라는 단단한 근육이 우리 모자(母子)에게 생겨난 것이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 데서 시작되었다. 잠자는 사자를 깨우는 것은 다름 아닌 부모의 '용기'다. 내가 먼저 사자가 되어 "나를 따르라"는 강인한 뒷모습을 보일 때, 아이 또한 정글로 나갈 힘을 얻는다. 실제로 내가 불안을 거두자, 겁 많던 아이는 어느덧 '씩씩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사자 새끼로 변해가고 있었다. 용맹한 부모 아래 어찌 약한 자식이 있겠는가. 호부호자(虎父虎子)의 이치는 결국 부모가 먼저 떨치고 일어나는 용기에서 완성된다.

이런 마음의 소란함을 달래려 찾은 고향 의령에는 늘 변함없는 나의 어머니가 계신다. 어머니는 의령의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봄이면 연둣빛 싹이 돋고, 여름의 뙤약볕을 견뎌야 가을의 황금 물결이 온다는 자연의 순리를 온몸으로 증명해 오신 분이다.
"또박 또박 천천히." 어머니의 이 한 문장은 너른 들판이 시절을 따라 제 색깔을 찾아가듯, 우리 아이도 자신만의 속도로 영글어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부모가 불안이라는 모래주머니를 내려놓고 의령의 대지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켜줄 때, 아이는 비로소 제 기량을 발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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